쓴다/여행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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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10. 어느 여행의 기록 (0)쓴다/여행 기록 2020. 6. 6. 02:36
신제주 날이 춥다. 문구점을 찾으러 시내를 헤매고 다녔다. 결국 찾지는 못했지만 시내에 머문 덕분에 스타벅스 바닐라 티가 나한테 맞는다는 것도 알았고, 제주에서 유명하다는 올래국수도 먹었다. 여행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준다. 이를 느낄 때면 삶에 대한 자신감도 커진다. 삶이 내가 기대한 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그러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기쁨과 즐거움 또한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걸 보면, 나는 '인생을 잘 살아야 한다' '지금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종류의 강박을 자주 느끼는 것 같다. '잘'이나 '최선'은 여기서 무엇일까? 남들이 그럴 듯하다고 인정하는 것일까? *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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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11. 어느 여행의 기록 (1)쓴다/여행 기록 2020. 6. 6. 02:36
내도동(1) 제주에 도착한 것은 3일째인데 일기를 쓰는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일기 쓰는 것을 차일피일 미뤘다. 글 쓰는 것은 되도록 미루고 싶은 어색하고 꺼려지는 일이다. 한 번 쓰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것 같고, 어느 정도 양을 채우고 완성된 내용이 나오기 전에는 중간에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글쓰기를 꺼리게 만든다. 하지만 글쓰기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방금 한 문단을 쓰면서 생각했다. 먼저 짧은 분량을 쓰더라도 개의치 않아야 한다. 글을 가장 부담없이 쓰기 위해서는 한 줄만 쓰자는 심정으로 펜을 들어야 한다. 둘째, 가장 쓰고싶은 말부터 써야한다. 말을 꺼내는 데 힘을 쏟다가 해야할 말을 충분히 못하면 그 다음부터 글쓰기는 수고롭기만 하고 별로 보람은 없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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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15. 어느 여행의 기록 (3)쓴다/여행 기록 2020. 6. 6. 02:34
내도동(3) 엊그제 밤에 배가 아파서 3일만에 일기를 쓴다. 매일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 있더라도 여하의 이유로 못하는 날이 있을 수 있는데, 아주 짧은 분량을 쓰더라도 연속으로 사흘을 공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몸을 다스리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첫째, 제주도 와서 가장 잘 잤다. 중간에 깨지도 않고 개운하게 일어났다. 둘쨰, 목욕을 갔다. 아침에 컨디션이 어떤지 (정확히 배 상태가 어떤지) 감을 잡기 힘들었지만 아침을 먹고 목욕하러 갔다. 셋째, 간단하게나마 점심을 죽으로 먹었다. 뭔가 먹는 게 조금 부담스럽게도 느껴졌지만 먹어서 축구장에 갈 수도 있었다. 넷째, 축구장에 가서 춥다고 느끼고 자리를 옮겨 앉았다. 추위를 더 참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 다섯째, 구운 닭갈비를 먹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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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16. 어느 여행의 기록 (4)쓴다/여행 기록 2020. 6. 6. 02:33
내도동(4) 오늘은 이번에 제주 와서 가장 멀리 가장 오랫동안 걸었다. 4시간 정도 10km, 다 합쳐 하루 대략 13km 정도를 걸었더니 고관절이 뻐근하다. 가방을 짊어지고 다니면 길을 온전히 느끼면서 다닐 수 있을지 상상이 안 간다. 1차 목표였던 광령리사무소에 도착해서 더 갈지 고민했었다. 배도 약간 떱떱하고 가고싶었던 항파두리까지도 너무 멀고 저녁 먹는 시간까지 외도동에 못 맞춰갈 것 같고... 고민하다가 갈 수 있는 데까지 더 가기로 했다. 기분 좋게, 괴롭지 않게 갈 수 있는 데까지. 항파두리에서 외도로 내려가는 버스는 없었지만 근무하시는 아주머니의 차를 얻어타고 편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돈이 없지 않은 이상, 여행을 다니며 걱정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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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18. 어느 여행의 기록 (6)쓴다/여행 기록 2020. 6. 6. 02:31
내도동(6) 오늘은 해 떠 있는 시간의 반쯤 스마트폰을 보면서 지냈다. 맞고를 조금 치다가, 일본 배우의 이미 봤던 백과사전 기사를 다시 찾아보다가, 일본 TV에서 한국을 다룬 영상까지 거의 서너시간을 찾아보았다. 사이에 찬기와 성만이와 전화통화도 했다. 여기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기로 했으니 그렇게 한 것도 자책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나는 이런 식으로 웹서핑(?)을 하고 나서 찝찝함을 느끼곤 하는데 왜일까? 우선 다른 더 해야할 일이 있는데 정면으로 대좌하지 못하고 도피했다는 창피함, 죄책감 때문이고 그 다음은 즐기는 것치고 내가 주가 되어 무언가를 즐겼다는 느낌보다는 종이 되어 끌려다닌 느낌 때문일 것이다. 내가 해야하는 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될 수 없을까? 어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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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0. 어느 여행의 기록 (7)쓴다/여행 기록 2020. 6. 6. 02:30
거문오름 이미 좋은 풍경을 많이 보았어도 새로운 길을 떠나듯이, 인생은 이미 삶의 달콤한 순간을 많이 맛봤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쁨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그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나의 신경을 빼앗는 중요치 않은 일, 걱정과 시름에 쏟는 열정과 관심을 줄여야 한다. 어떤 일을 대면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은 단순한 회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는, 그러나 꼭 맞부딪쳐야만 하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파고들어가 생각한 다음 중간 결론이 나왔다면 그 다음 행동을 개시해야 할 시점을 명백히 해두고 그때까지는 기쁨을 주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 에크하르트 톨레가 말했던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은 나 자신에 집착하지 않고, 나와 거리를 두고 우주적 혹은 외부적 견지에서 스스로를 볼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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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2. 어느 여행의 기록 (8)쓴다/여행 기록 2020. 6. 6. 02:28
내도동(7) 나는 일기에 '어떤어떤 내용은 최소화하고 늘 간결하게 써야 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나머지 일기 쓰기를 어렵고 꺼려지는 일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오늘은 며칠 만에 러셀의 마무리를 짓는다. "(도덕적 용기와 지적 용기)에 관해서도 비법이 있다. 적어도 하루에 한 가지씩 고통스러운 진실을 스스로 인정하라. 그러면 이 방법이 날마다 친절한 행동을 연습하는 보이스카우트 훈련법처럼 유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도덕성이나 지성에서 친구들을 월등하게 앞서든 앞서지 못하든 관계없이, 인생은 살 만한 보람이 있다고 느끼도록 자신을 훈련하라. 이러한 훈련을 몇 년간 계속하다 보면 두려움 없이도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두려움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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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3. 어느 여행의 기록 (9)쓴다/여행 기록 2020. 6. 6. 02:28
내도동(8) 9일에 시작했던 여행이 20하고도 3일째의 저녁을 맞았다. 주말 내내 아침에 계속 자거나(이건 낫다) 일어나서 계속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기 때문에 오늘은 일어나서 거의 바로 움직였다. 주말에는 열시쯤 눈을 뜬 다음에도 일본 TV의 한국 관련 프로, 무한도전 2회치, 엔하의 무도 항목, 비정상회담 외국반응 등을 찾아보다 두시 넘어서야 움직이곤 했다. 오늘 처음 일어났을 때는 여행을 이렇게 길게 했는데도 별로 설레이지도, 기쁘지도 않고 '이제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해야할 거 많다'는 생각에 심드렁하다가 누가 온 줄 알고 깜짝 놀라 마루에 나가는 바람에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씻으러 들어갔다가 내친 김에 화장실 청소를 했다. 오전에 두시간 정도 청소와 빨래를 하고나서 점심 먹고 들어와 도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