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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10월 26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쓴다 2020. 6. 6. 02:39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이 어딘가 나사가 풀려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바로 그때가 옛일을 더듬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그 비루한 현실이 또 지나고나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추억의 대상이 된다는 점은 언제나 아이러니합니다. 제가 최근 열심히 챙겨본 몇 안되는 프로에서 나온 얘깁니다. 윤여정 씨에게 작가가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자 그녀가 그러더군요. "천만에, 절대 안 돌아가고 싶어요. 난 그때 너무 힘들게 살아서 다시 돌아가면 그렇게 못 살 거에요." 저는 그 말이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나이 든 사람이라면 당연히 젊음을 그리워할 거라 생각했던 것이죠. 스물보다 서른에 훨씬 가까워져 있는 지금, 저는 인생의 클라이막스가 이미 나를 스쳐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새로운 글을 쓰는 것보다 예전에 썼던 글을 뒤적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더군요. 간혹 새로운 글을 쓸 때도 예전에 이 비슷한 글을 어떻게 썼는지 오래된 파일부터 더듬곤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지나갔다고 믿는 클라이막스를 꼼꼼히 돌이켜보면, 사실 별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한담을 나누던 시간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 조금 덜 망설였던 순간들, 걱정보다는 일단 무작정 부딪치고 봤던 결정들이 거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 나는 여유가 없고, 더 머뭇거리며, 더 움츠러든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그런데 정작 그 당시에도 지금 내가 잘하고 있다,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만은 확실히 기억납니다. 그 당시에도 저는 제 자신을 여유가 없고, 머뭇거리고, 움츠러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다만 그때와 지금의 내가 확실히 다른 게 있다면 미래에 대한 감각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때 제가 느꼈던 미래란 무엇이 될지는 몰라도 지금의 나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겠지라는 낙관이었습니다만, 지금 생각하는 미래는 똑같이 불분명하긴 해도 훨씬 단조롭고 나를 세상이라는 정해진 틀에 끼워맞추는 고통스러운 과정일 거라는 체념이 깔려 있습니다. 즉 제가 자꾸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면 그 이유는 정말 과거가 지금보다 더 나았기 때문이 아니라, 미래가 지금보다 더 나을 거라는 희망이 희박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확실한 것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무엇이 아무리 미약한 것일지라도 틀림없이 안 하는 것과는 다른 결과를 불러오는 것입니다. 로마 제국이 황혼에 접어들고 있었던 오래 전의 어느 날, 초로의 남자가 정원에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나이는 서른 둘. 평균 수명이 길지 않았던 그때로서는 인생에서 죽음이 머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그는 성공한 웅변술 강사로서 모든 걸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삶에서 더 이상 어떤 진보도 변화도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영화 속에서 조용히 쇠락해가던 그의 모국과 문명 역시 어떤 기대를 품을 수 없었습니다. 희망도 없고 절망도 없이 단지 모든 게 이렇게 끝나버리고 있다는 깨달음 속에서 그가 울고 있을 때, 옆집 아이의 노랫가락이 담장을 타고 넘어왔습니다. "집어들고 읽어라, 집어들고 읽어라." 그는 벌떡 일어나 성경을 들고 한 줄씩 읽어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이 이야기의 아우구스티누스처럼 후세에 기억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에 임박해서라도 우리는 여전히 행동할 수 있고, 그 행동은 집어들고 읽는 것처럼 사소한 것이어도 충분합니다. 아이가 에베레스트를 오르겠다는 생각을 품고 걸음마를 배우는 게 아닌 것처럼, 우리는 위대한 성취의 일부라는 생각을 품지 않고도 사소한 것에서 미래에 여지를 낼 수 있습니다. 그게 더 낫다는 걸 알아서가 아닙니다. 단지 그러는 편이 삶에 끌려다니지 않고 삶을 끌고갈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써진 이 글에서 결국 저는 답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미리 해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가 하나하나 돌아보고 싶은 주제들은 남아있기에 앞으로도 이야기는 계속 이어나가보려 합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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